만우절 추억하기


만우절은 매년 찾아오는데 왜 그 재미는 점점 줄어드는지 모르겠다. 정말 오늘이 만우절이라는 것만 알면 0.01초만에 파악이 가능한 그런 쉬운 거짓말을 했음에도 불구, 모두들 너무나 쉽게 속아버리는 바람에 사실 좀 시시했다능...ㅠㅠ 어쨌든 만우절만되면 고3때 마지막 만우절을 보낸 일이 조건반사처럼 떠오른다.



학창시절 만우절은 거의 노는 날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떻게 재미있게 만우절을 보낼까? 하는 학생들의 잔뜩 부풀어오른 기대감 속에 선생들도 나름, 요 녀석들이 어떻게 속일까나? 하는 기대감도 은근슬쩍 엿보인 건 사실이구. 각 반의 학급 임원 중 한명씩 바꾸는 것을 비롯(3학년 교실에 가서 수업듣기 - 단 수학시간이면 낭패!) 교복을 뒤집어입고 앉아있거나, 모든 체육복을 교복 속에 쑤셔넣고 마치 아파서 엎드려있는 사람의 모형을 만들어 선생을 속이기도 했고, 덩치가 작은 아이를 교탁 속에 숨겨놓고 수업중에 갑자기 선생의 손을 만지게 해서 선생을 깜짝 놀래킨다거나 뭐 그런 유치해보이지만 해보면 재미있는 것들... 그러다보니 고3이 됐을 땐 마지막 만우절을 어떻게 하면 기가막히게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잔머리는 이미 그 굴리는 속도가 메이저급이었었다.




그런데 1교시가 시작되기 전 미친깽깽이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내용인 즉, '너네 만우절이랍시고 깝죽대다 걸리면 쥑인다.' 였다. 순간 여기저기서 풍선에 바람 픽픽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미친미친!! 마지막 만우절을 그냥 평소와 다름없이 그렇게 보내라는 말인가 ㅠㅠ 고3은 인간도 아닌감! 하면서 말이다. ㅋ



그 후 정말이지 불어터진 오뎅처럼 그렇게 축 처진 채 수업을 듣고 있는데 점심시간에 전교회장, 부회장 그리고 3학년 각 반의 반장과 부반장들이 급히 회의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6교시가 시작되기 전 쉬는 시간, 반장이 조용히 반 아이들을 자리에 앉게하고 위의 회의에서 결정 된 만우절 특급 작전을 소개했다. 그 작전은 바로 3학년이 단체로 야자를 튀자는 것. 정말 한명도 빠짐없이 그렇게 몇 백명이 되는 3학년 전체가 말이다.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임원진들의 모습이란 말인가 *_*




그렇게 모든 작전이 완료된 후 모두들 보충수업(아마 8교시였을 듯)까지 아주 조용히 수업을 들었다. 몇몇 선생들은 아마 아침에 방송한게 먹혀들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이미 쉬는시간에 책가방을 다 챙긴 상태였다. 신발만 잽싸게 갈아신으면 완료다! 이 얼마나 철저한 계획인가~ 8교시를 마치는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모든 아이들이 미친듯이 책가방을 숨기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8교시 이후는 1,2학년들이 하교하는 시간이자 3학년들은 저녁을 먹는 시간이기 때문에 1,2학년들 사이에 섞여서 나가면 아무 문제가 없을거다! 그렇게 3학년 담임 선생들의 눈을 몰래몰래 피해 스쿨버스에 올라타고 빨리 버스가 출발하기를 바랬다. 출발할 때까지의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는지 당장이라도 선생이 스쿨버스로 올라와 3학년들 다 나와! 하며 소리지를 것 같았다 ㅠㅠ




그런데 사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고나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건 사실이다. 내가 소심해서 그런가, 친구와 전화기를 부여잡고 내일일을 걱정하기까지. 내일 우린 죽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어.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저녁시간이 끝나고 야간자율학습 담당 선생님께서 각 반을 검사하기 위해 내려오셨는데.. 어? 희한하게 미친듯이 조용하더란다. 이상하다... 이 녀석들이 이렇게 조용할리가 없는데... 하면서 창문을 통해 교실을 쓰윽, 들여다봤는데 이게 뭐야!?!?!? 학생들이 없어! 이 반도! 저 반도!! 심지어 기숙사까지 올라가봤는데 3학년이 모두 증발해버렸어!!(그 때 3학년 기숙사 아이들은 음악실에 대피해있었음ㅋ) 너무 황당해서 3학년 전용 교무실로 다다다다 올라가셔서 다른 선생들에게 외쳤단다.


"쌤요! 야들 어데갔능교?!"





아하. 그렇구나 만우절이라고 3학년 이것들이 단체로 선생들을 속였다는 결론에 허허허... 하면서 이것들을 어떻게 벌을 줄까 고민하고 있을 때쯤 교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단다. 어라 학교 앞 중국집 사장님이시네? 사장님은 짜장면, 짬뽕, 탕수육 그리고 고량주까지 푸짐하게 꺼내놓으시고 마지막으로 철가방에서 카네이션 여러송이를 꺼내시면서 한마디 덧붙이셨당.


"쌤요~ 아그들 귀엽게 봐 주이소~"




싸장님 원츄 ㅠㅠb 앞으로 더 자주자주 짬뽕 먹을게요.T^T 그렇다 사실은 3학년 모두가 다 튀어버리면 뭔가 허전하고 선생님들도 열 받을게 뻔하니 각자 100원씩을 거둬 학교 앞 중국집에서 음식을 다채롭게 시켜드리자는 결론을 냈던 것이다. 역시나 그 말이 마치기가 100원이 각 반에서 순식간에 모여지기 시작했다. 살아생전 이렇게 돈이 순식간에 일사천리로 모여진 적은 없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 쭝국집 사장님의 저 한마디에 선생님들은 자지러지셨단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아아 진짜 죽었다... 하는 마음이 증폭되는 순간!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미친깽깽이의 목소리. 3학년 전체, 책상 위로 무릎꿇고 앉아있어. 아아아... 몽둥이로 허벅지 내려치시려나? 완전 죽었다 ㅠㅠ 하면서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어라? 얼마 되지않아 내려오라고 하시더라. 그런뒤 나눠주셨던 초코파이와 요구르트. 사실 계획은 이랬다. 운동장에서 엄청나게 단체기합을 준 뒤 너네가 음식을 시켜준 것 처럼 우리도 간식을 나눠주리라! 하지만 하필, 고맙게도 비가 내릴 줄이야!! 그렇게 마지막 만우절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가 되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2학년 후배들이 1년 뒤, 우리가 했던 것 고대로 따라했다가 다음날 미친듯이 벌 받았단다ㅋ 전설은 한번이면 족한 법.


by 플라멩코핑크 | 2008/04/01 21:52 | 생각들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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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4/03 04: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한솔로 at 2008/04/04 14:37
와~ 아름다운 행동인데요!
몇백 명이 단합된 날이네요
만우절 날 정말 선생님한테 드러운 장난 하는 인간들도 있고 그것땜에 괜히 단체기합 받은 적도 있어요 -_ㅠ
저는 친구들한테 장난하다가 살인미수가 될 뻔한 적도 있네요...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8/04/04 22:21
비공개님 / 아 리플 시간에 기겁했어요. ㅠㅠ 정말 제 입장에서는 대단하시다라는 말 밖에는 ㅠㅠ 어쨌든 감사드려요. 왠지 제가 답을 재촉한건 아니겠지요?? 왠지 그게 걱정이라능...


한솔로님 / 캄사합니다.(엥?) 사실 학교 역사상 몇백명이 되는 인원이 저렇게 짧은 시간에 뭉친 적은 정말 전무후무할 거예요. 후후.
Commented by トンヒdonghee at 2008/04/05 04:55
완전 소설소설
우하하하 너무 웃겨서 배를잡고 웃었어요.
감동의 드라마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중국집 아즈씨 짱이에요.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8/04/06 21:40
トンヒdonghee님 /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기분이 좋아요^^ 그나저나 중국집 아즈씨 짜앙!! 그 일 이후로 매출이 급상승하셨다는 소문아닌 소문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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