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vs 도련님



사실 인간실격은 서점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절 유혹하던 녀석 중 하나였지요. 제가 얄팍한 책에 잘 이끌리는 건 어케 잘 알아가지구...그 후 알코릴라님의 블로그에서도 보게 되었고. 게다가 YES24에서 아이쇼핑(이라고 해야할지..)하던 중 5천원도 안되는 가격에 팔길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팍! 질러버렸습니다. 어쨌든...그렇게 지른 책 중 인간실격과 도련님을 읽었는데 특히 인간실격은 알코릴라님의 말씀대로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먼저 인간실격에 대한 느낌은....


인간아!




전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자신감이 없는 사람을 보면 왠지 화가납니다. 누가 봐도 멀쩡하고 심지어 아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 뭐가 문제가 있는지 힘 없이 궁시렁궁시렁거리기만 하고 눈치만 보고. 게다가 이 세상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가 순수했다고요? 아니 사실 그는 정말로 '인간실격'이었을지도 몰라요. 차라리 '도련님' 속 주인공이 오히려 더 순수에 가까울지도.


인간실격 속 주인공이 생각의 잔가지가 무쟈게 많은 어두침침한 스타일이라면 도련님 속 주인공은 그 반대입니다. 쉽게 말하면 '욱'하는 스타일이라서 앞 뒤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본능에 따른 행동을 저지르는 것이 문제인 사람이죠. 그렇다고 그게 좋다는건 아니고... 인간실격 + 도련님 반반씩 섞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신중할 땐 신중하고, 싫거나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NO! 라고 말예요. 어쨌든 두 소설 속 두 주인공이 모든 면에서 정 반대의 캐릭터이고 분위기도 반대인지라 인간실격을 읽은 후 도련님을 읽고 있자니 마치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날 듯한 자욱한 안개 속에 있다가 쨍쨍한 무더위 속의 공간으로 이동한 기분이랄까.



사실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가진 회식자리에서 - 여기서부터 과격한 표현 좀 쓸게요 - 정말 개같은 일이 생겼어요.저를 비롯 다른 - 어리고 갓 들어온 사람들 - 스탭들의 윗 상사에 대한 믿음 내지는 존경에 대해 그들은 그딴식으로 답하면 안되는거죠. 그때 저와 그 사람들이 당한 일들을 자세히 말하려니 정말 창피하고 개같은 일이라 말은 못하겠는데, 어쨌든 그 당시 전 인간실격의 주인공이었어요.


정말 입 안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혓바닥 위의 사탕처럼 쉴새없이 왔다갔다거렸지만 결국 꿀꺽 삼켜버리고 말았죠. 저도 결국 눈치를 본 거예요. 그 짧은 시간에도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했지요. 다음 날 어떻게 될까. 내가 이 말을 하고 이렇게 행동하면 이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등등등. 결국 엿들으란 식으로 전 일부러 큰 소리로 칭얼거릴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까지도 개운하지가 않아요. 차라리 도련님이 되었다면 저따구로 간접적으로 불만해소를 하지는 않았겠죠.


게다가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저를 비롯 다른 사람들에게 행동하는 걸 보니 너무 역겹고 진짜 뺨이라도 갈겨주고 싶더군요. 그래도 간접적으로 칭얼거렸던 게 조금은 먹혔나보죠. 찔리는 게 있는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지내보려고 은근슬쩍 눈치를 보기도 하더군요. 물론 그건 제 생각이지만 뭐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얘기하긴 하던데. 어쨌든 개운하지가 않아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정말 면전에서 뭐라 말이라도 했을텐데.


짜증과 분노가 마치 찻잔 속 티백처럼 서서히 우려지는 듯한 기분이예요. 이 짜증이라는 이름의 차를 버리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우려지게 되고 결국 썩어버리겠죠. 결국 인간실격 속 주인공에 대하여 더욱 더 화가 나는 이유는 마치 그 당시의 제 모습을 보는 듯해서 그럴지도. 아직까지도 열불이 나는 이유는 윗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이 아니예요. 내가 왜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에 대한 후회일뿐. 진짜 그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젝일!! 가끔씩은 도련님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어쨌든 오늘은 포스팅이 이래저래...이해하세요.
요즘은 그래서 헐크모드라죠.

by 플라멩코핑크 | 2007/08/07 02:45 | 읽을래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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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arlowe at 2007/08/07 09:44
[도련님]을 작년에 읽었는 데, 기대만큼 재밌지가 않아서 실망했어요.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데다, 비슷한 성격의 주인공을 워낙 많이 봐서 그런가봐요.
가끔은 저도 확 내지르고 싶은 데, 그것도 타이밍을 맞추기가 힘들더군요.
Commented by 근성오빠 at 2007/08/07 12:21
인간 실격을 읽으면 우울해 질까봐 못 읽고 있슴다 ^^; 제목부터 심상치 않잖아요.
도련님은 잼나게 읽었죠.

헐크 모드로 변한 사연이 궁금하네요~ ㅎㅎㅎ
힘내소서~ 홧팅!
Commented by 캅후치노 at 2007/08/07 12:30
저도 도련님은 읽었었는데.ㅎ 올리신거랑은 다른 출판사인 거 같네요. 표지가 예뻐서 손이 갔는데 무려 '서울대학교 추천도서'라는 부담스런 문구가..OTL
사실 이글루 링크에서 새글 올라온 거 뜨잖아요~ 거기서 플라멩코님 글 제목이랑 첫문단 쪼끔 보고 '오 플라멩코핑크님이 연애를 하시는데 한사람은 인간실격이고 한사람은 도련님스타일이구나' '근데 그 인간실격이란 사람은 책방에서 작업을 한 모양이지?' 막 이런 어이없는 추측을ㅠㅠㅠ 책 얘기였네요ㅎ
나이가 먹어갈 수록 드는 생각인데 사회경험이 더 많다고 해서,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그분들이 항상 올바른 행동만 하시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엄마를 봐도 느끼는 거구요. 몰래 존경하던 분들이 '정의롭지 않은' 언행하시는 걸 목격하면 참 혼자 기대해놓고 씁쓸해져요.
Commented by 캅후치노 at 2007/08/07 12:31
그나저나 화이팅! 하지만 헐크모드도 나쁘지 않으세요 :)
Commented at 2007/08/07 12: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ORANGE at 2007/08/07 12:56
같은 취향이시군요.. 저도 얄팍한 책이..쿨럭..^^
Commented at 2007/08/07 13: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8/07 13:21
도련님은 몰라도 인간실격은 정말 다자이 오사무의 사소설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듭니다.(사소설 맞나=ㅅ=) 갈색작가 라는 별명이 어울리다 못해 보는 사람마저 갈색으로 퇴색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죠. 그래도 전 나츠메 소세키 보다는 다자이 오사무가 좋아요 'ㅂ'
Commented by pacifica at 2007/08/07 17:35
무가치한 사람들 때문에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말씀하신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잘하셨습니다.
Commented by 단미 at 2007/08/07 21:43
둘다 힘든 성격 이겠어요..저는 온순하고 남에게 행복한 말만 해주고 정말 아닐땐 조분조분 달래가면서 이야기도 해 줄줄 아는 그런 사람이 좋아요..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7/08/07 23:40
marlowe님 / 만일 도련님만 읽었다면 그저그런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말 그대로 '도련님' 덕분에 인간실격을 읽은 뒤의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어느정도 밝게 바꿀 수가 있었지요. 저도 내지르고 싶지만 역시나 타이밍...전 그 타이밍을 늘 놓쳐서 후회막급입니다. 차라리 저지르는게 나을지도 몰라요. 이렇게 혼자서 끙끙거리느니 T^T

근성오빠님 / 제목이 심상치 않죠? 아마 심히 우울해지실지도 몰라요. ㅎㅎ 혹 읽을 기회가 생기게 된다면 아주 재미있는 만화책 내지는 영화, 책을 준비하세요 ㅋㅋ

캅후치노님 / 캅후치노님의 댓글을 읽고 뒤집어졌어요 ㅠㅠ 아 이렇게 웃게 해주셔서 감사^^ 덕분에 잠시나마 양다리 걸쳤네요 ㅎㅎ 그런데 만일 진짜로 저렇게 된다면 전 차라리 도련님을 선택하겠어요. 도련님은 욱 하는 스타일이긴 해도 말은 잘 듣거든요. ^_^ 어쨌든 감사해요 힘이 불끈불끈! ^_^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7/08/07 23:52
비공개님 / 아이궁^^; 책 속의 상황을 겪은것이 아니라 책 속 주인공들이 된 기분이랄까요. (죄송해요 글발이 없어서!) 어쨌든 저도 완전 생지옥이나 다름이 없어요. 사실 오늘도 회사사람과 맥주 한잔씩 나누면서 실컷 속풀이하고 왔다죠. 그래도 잠시 뿐이네요. 에이 젝일. 어쨌든 책은 나쁘지 않았어요. 읽고 난 뒤 기분이 동요될 정도면 훌륭한 작품이란 증거겠죠? 책값도 비싸지 않은데 보내드릴까요? ^^ 맘 변하기 전에 얼른 절 찔러보세요. ㅎㅎ 아무튼 감사해요. 비공개님도 힘내세요 T^T

ORANGE님 / 왠지 얇은 책일 수록 집중이 잘 되더라구요. ^_^ 가지고 다니기도 문제없고...ㅎㅎ 그나저나 뺨때리기 게임 엔딩은 아직이신가요? ^_^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7/08/08 00:05
또 비공개님 / 저도 요즘 비소설을 읽으려고 하는데 자꾸 문학쪽으로 손이 가게 되네요. 이런... 도련님은 음.. 사실 뭔가 허전한 구석이 있는 책이긴 하죠..그래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기분전환용으로 제격이랄까? 그리고 맞아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죠. 사치. 처음엔 이거 웃기는 놈일세? 하고 읽어가다가 후엔 정말 열이 받더군요. 사치. 정말이지 복에 겨운 놈 같으니라고. 어떻게 보면 인간실격은 인간실격자의 하소연 내지는 핑계글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래도 이해불가. 우울해지는 소설이었지만 저 역시 누군가에게 강력추천하고 싶은 이 아이러니. 비공개님도 여름 잘 보내세요 ^_^

제철초님 / 아 그렇군요! 사소설. 갈색 맞아요. 이건 검은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니고 뭔가 찜찜하기도하고 은근슬쩍 기분나쁘죠. 게다가 작가의 이력을 보니 이런 글을 쓰고도 남겠다 싶더군요... 정말 작가는 아무나 하기 힘든 직업인가요. ㅎ 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어요. 주절주절 늘어놓는 요설체 때문인지 왠지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예요. ^_^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7/08/08 00:07
pacifica님 / 아 진짜 엿들으라고 칭얼거리지 않았다면 전 진짜 미쳐버렸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용기가 납니닷. 그래! 넌 잘 했어~ T^Tb 라고 말예요. 그렇지만 계속해서 아쉬움이 남는걸요. 시간이 해결해주겠죠. 모르겠어요. pacifica님 블로그에 올라온 사천 짬뽕, 탕슉 같은 매운거 먹고 열불 좀 냈음.

단미님 / 저도 그런 사람이 좋아요. 전 의외로 잘 풀리는 성격이기도 해서^^ 그런데 너무나 온순한 사람들을 보면 화내는 일이 별로 없던데 왠지 화내면 엄청 무서울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답니다. *_*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8/09 00:50
저도 도련님은 읽었는데... 잘 기억은 안 납니다. 아무튼 열받는 일을 그 때 대응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홧병이 나는 거, 그거는 언젠가 확 풀어버리는 한 마디를 할 때가 오면 완전히 극복하게 될 겁니다. 그 날이 몇 년 뒤에 올지 모르지만 아무튼 언젠간 옵니다 :)
Commented by chan at 2007/08/09 17:34
복잡하게 생각하는건 싫어요.
단순 무식하게.그저 기분좋은생각만.
Commented by Rosa at 2007/08/10 00:57
인기짱 블로그네요..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7/08/11 00:41
hertravel님 / 하아...몇 년 뒤인가요? 어쨌든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할 것 같네요. T^T 아 하나가 뒤틀리니까 나머지도 짜증나요. 흑

chan님 / 맞아요. 그게 최고죠^_^ 그런데 전 소심해서 단순 무식이 안되요 잉잉

Rosa님 / 앗, 제 블로그가요?? 감사해요 그래도 Rosa님 블로그에 비하면야 ^_^
Commented by 알코릴라 at 2009/06/22 08:28
플라멩코핑크님 잘 지내시죠?
도련님 읽어야지 읽어야지.. 이 포스팅 보고 간절해 하다가..
군대라도 다녀왔는지, 거의 2년 지난 오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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